마리
큐리(Marie Curie; 1869~1934)와 피에르 큐리 (Peirre Curie(1859~1906)는 방사능분야에 가장 유명한
사람으로 피에르는 파리에서, 마리는 폴란드에서 태어났읍니다. 1895년에 이들은 결혼하였고 이후 소르본느 대학에서 광물로부터 우라늄을
화학적으로 추출하는 공동연구를 통해 마리는 1903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1910년 방사선회의에서 방사능의 기본단위로 "큐리(curie)"를
채택하였으며 3년 후 마리는 방사능을 띤 새로운 원소, 즉 폴로니움(Po)과 라듐(Ra)발견하여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큐리부부와
함께 연구를 수행하던 헨리 베크렐(Henri Becquerel) 또한 1903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고 오늘날 "베크렐(becquerel)"은
방사능의 SI단위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독일 태생의 오토 한(Otto Hahn; 1879~1968)은 방사성토륨과 메조토륨을 발견하였고 바륨을 발견한 리제 마이너(Lise
Mertner)와 프리츠 스트라스만(Fritz Strassman)과 공동연구를 수행하였습니다.
뢴트겐(Wilhem
Conrad Roentgen)은 1895년에 X-선을 발견하였습니다. 이후 X-선의 이용은 급속도로 확대되어 1896년 2월에는 대부분의
주요 도시에서 적어도 한 대의 X-선 발생장치를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1901년에 뢴트겐은 최초의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1901년에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페르미(Enrico Ferrmi; 1901~1954)는 21살의 나이에 X-선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을
받고 1938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으며 1939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시민이 되었습니다. 그는 뉴 멕시코의 로스 알라모스
연구소에서 물리학을 가르치며 헝가리 태생의 레오 스칠라드(Leo Szilard) 등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1942년 12월 2일에 시카고
대학의 미식축구 경기장의 지하에 있는 실험실에서 최초로 연쇄 핵반응을 유지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