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의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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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연구에서의 위대한 발견들 |
원자의
구조와 방사선에 관한 연구에서 진정한 진보가 이루어진 것은 19세기 후반에 들어서 입니다.
1800년대에 아이작 뉴튼 (Issac
Newton)은 중력에 관한 이론을 증명하였습니다. |
새로운 발견과 관련된 위험들 |
그러나 새로운 발견에 뒤에는 그 대가를 치뤄야했습니다. 과학자들은 방사선이 주요한 에너지원과 의학적 수단이 될 뿐만 아니라, 잘못 취급되었을 경우 인류 보건을 위협하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방사선 연구의 선구자들은 (많은 피폭으로 인한)방사선으로 유발된 질병으로 사망했습니다. 예를 들어 토마스 에디슨(Thomas Edison)의 조수는 X선에 과도하게 노출되어 방사선 유발암으로 사망했습니다. 산업사회가 도래함에 따라 여러 분야에서 방사성 원소의 이용이 증가하였고 따라서 과다피폭으로 인한 사고도 증가하였습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야간비행 중에도 조종사가 계기판을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군용 비행기에 사용되었던 라듐 페인트가 한 예입니다. 전쟁이 끝난 이후 라듐 페인트를 이용하여 야간에도 빛이 나는 시침(aAoU)이나 손목시계 배경판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직종에 종사하던 젊은 여성들은 작은 부분에 정확히 야광물질을 칠하기 위해 입술로 붓의 끝을 예리하게 다듬었습니다. 불식간에 그들은 미량의 라듐을 섭취하게 되었고 이것은 건강에 커다란 손상을 가져왔습니다. 2년 동안 시계판의 라듐 도색작업에 종사했던 9명의 여성이 원인불명의 극심한 빈혈과 입과 턱뼈의 치명적인 손상으로 사망하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방사선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지식은 아주 저급한 수준이었는데 사망자 중 한 명의 치료를 담당했던 한 치과의사가 라듐도색과 턱뼈 골수의 염증과의 연관성을 찾아내었습니다. |
방사선방호의 필요성 |
1915년에 영국 뢴트겐학회는 X선의 과다피폭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자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하였는데, 이것은 방사선 방호에 있어 최초의 조직적인 노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후 방사선에 대한 인식과 지식이 발전하여 1920년대와 1930년대에는 세계 각지에서 방사선방호위한 많은 조직이 설립되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조직으로 현재의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nternation Commission on Radiological Protection; ICRP)"의 전신인 "국제 엑스선·라듐방호위원회"가 1928년에 설립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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